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한국인의 노벨상 수상은 2000년 김대중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이고 문학상은 최초다. 그간 고은 시인과 황석영 소설가 등이 수상자 후보로 거론됐지만, 번번이 불발됐다. 그 사이 일본은 다양한 노벨상 수상자를 내며, 특히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였다.
2016년 황석영 작가는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올해 우리나라를 주빈국으로 초청한 파리도서전 자리에서 “제발 노벨상 언제 받아 오느냐는 말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 한국 문학은 이제 겨우 세계 문학 시장에서 점포 하나 내놓고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8년만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셈이다.
노벨문학상에 의미를 남다르게 부여하는 이유는 다른 노벨상과 달리 한 민족의 한 국가의 삶과 생활을 농축한 작가가 세계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이 때문에 사실 한동안 한국의 문학은 세계 속으로 펼치기 어려웠다. 바로 번역의 문제였다.
문학적 성취로 보자면 그간 한강을 능가하는 작가들은 많았다.
특히 가장 많이 기대를 모아 도박사이트에서도 상위를 차지한 적이 많은 작가는 고은 시인으로 수년간 노벨문학상 발표 날에는 고은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 다음은 황석영 작가였다. 이런 선배들의 작품이 세계로 뻗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앞서 언급했듯이 번역 때문이었다.
전에 한 작가와 대화 중에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슬비, 안개비, 장대비, 보슬비, 여우비, 진눈깨비 등을 어떻게 번역할까. 아니 전라도 사투리와 경상도 사투리가 갖는 뉘앙스롤 어떻게 번역할까. 지금이야 어떻게든 하겠지만, 과거에는 이 작업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영어도 제대로 못한다고 평가받는 일본은 어떻게 노벨문학상을 비롯해 노벨상을 다수 수상했을까.
2018년 시게모리 타미히로 일본 리츠메이칸대 교수가 한국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에 이에 대해 자세히 나온다. 당시 기사를 살펴보자.
“일본어로 번역된 다량의 학술자료를 통해 연구 토대가 그 만큼 두터워졌습니다. 이런 높은 번역수준이 노벨상 수상에도 적잖은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본은 18세기 난학(蘭學·네덜란드학)을 시작으로 메이지유신(1868년) 때에는 정부내 ‘번역국’을 설치해 단기간 수만 권의 번역서를 출간했다.
시게모리 교수는 “번역을 통한 지식의 인프라 축적은 근대화를 견인한 원동력이었다”며 “(일본) 정부의 학술진흥지원은 선생님(유럽 학문)을 흉내내는 것에서 자신의 연구를 개척하는 시대로 변화해 갔다”고 강조했다.
2013년 당시 김성곤 한국문학번역원장은 이런 말을 했다.
“문학계에서 ‘번역자는 반역자’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비판을 많이 듣습니다. 또 미국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는 ‘시가 번역 과정에서 향기를 잃는다’고 폄하한 적도 있을 정도예요. 하지만 좋은 번역은 향기를 살릴 수 있습니다. 번역가에 대한 정책적 뒷받침이 절실합니다.”
앞서 언급한 황석영 작가가 파리도서전 자리에서 이런 말도 했다.
“노벨상 열풍이 우리 문학의 해외 번역을 추동하는 원동력이 되긴 했지만, 일본은 번역이 된 지 벌써 100년이 됐고, 우리는 이제 시작됐으며 그마저도 한류 영향이 크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어찌 보면 문학적 성취와 더불어 한국 번역 문학이 잘 닦이고 있다는 것과 새로운 길이 열렸다는 것이 아닐까.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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