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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블로그뿐만 아니라 이곳저곳에 쓰다보면 상당히 다양한 반응을 접하게 된다. 그런데 이 반응은 단순히 정리하면 크게 세가지 정도이다.

 

첫번째는 의견에 대한 조목조목 반박이다.  내가 세상을 수백년 살지도 않았고,  다른 사람이 해보는 경험을 '모두' 해보지 않았기에 당연히 내 사고방식에는 편협성이 없을리 없고, 틀린 점도 많을 것이다. 그것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글을 접할 때는 고맙고도 무서운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가 쓰고 싶은 글, 내가 하고싶은 말을 좀더 다듬을 수 있으니까.

 

문제는 두번째와 세번째다. 한꺼번에 이야기하면 순식간에 나를 '적' 아니면 '아군'으로 삼아버린다.

 

예를 들어보면.

 

'차 접대'에 관한 글을 쓰고나니까, 나온 반응은 나를 여성으로 안다는 것이다. 차 접대 문제는 남녀를 떠나 자칫 소소한 문제로부터 시작한 '급'의 기준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쓴 글인데, 나를 남성사회에 불만이 많은 여성으로 인지한다. 동시에 여성들은 자기 편으로 아는 모양이다.

 

과거 기독교에 관한 글을 썼다. (물론 비판적) 나를 무슨 사탄 보듯이 하며 타종교인으로 인식하고 비판이 가해졌다 (비난이 옳을런지도) 난 무교다. 때문에 자유롭다. 아니 설사 내가 기독교인이라도 그런 류의 글은 충분히 쓸수 있다. (글 내용은 2002년에 한국기독교총연맹이 붉은 악마라는 용어를 폐지하고 하얀 천사 등의 용어로 대체하자고 정부에 요청한 사항을 비판한 글이였다)

 

우리는 이상하게 내부비판에 익숙해져있지 않다. 설사 비판이 있더라도 완화된 적당히 사정을 아는 선에서 논하게 된다. "우리끼리 왜 이래"라는 인식으로 모든 비판이 시작한다. 나랑 같은 조직에 있는 사람이 (또는 동질성을 띈 사람이) 그 조직을 비판하면 '적'이 된다.

 

설사 나랑 의견이 안 맞는 대치점에 있는 조직에 속한 사람이라도, 그 조직에 대해 비판을 하면 갑자기 나랑 같은 편이 된다. "적은 적은 나랑 같은 편이다"라는 공식이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의식이나 정치성으로 뭉친 조직은 전제에 '동질성'을 강하게 띄어야 하고 띌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동질성이 그 조직의 잘못까지도 감쌀 수는 없다.

 

한나라당 원희룡의원이 한나라를 비판하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원의원이 한나라를 비판하면 사람들은 왜 그 사람이 그 조직에 들어가 있는가를 의아하게 생각한다. "열린 우리당으로 가면 되지 않느냐"라는 비난까지 한다. 원의원이 커다른 정치적원리를 한나라와 같이하며, 사학법 반대투쟁등의 개별적 사안에 대해 반대한다는 인식은 하지 않는 모양이다.

 

비판은 다양성을 띄며, 누구나 비판할 수 있고 누구나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고, 옳은 것은 옳은 것이다. 여기에 "우리끼리" 혹은 "우리는 같은 과인데"라는 전제가 깔리면 잘못된 것도 옳게 평하고, 옳은 것도 잘못 평하게 된다.

 

세상은 이분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적'과 '내 편'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제 3자도 있고 제 4자도 있는 것이다.

 

여성직원의 차접대에 대해 글을 썼다고해서 나를 갑자기 성전환수술시킨 사람들의 댓글을 보며..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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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전에 학교사무원들의 차접대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다. 요지는 학교 사무원 (특히 여성)분들이 담당업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당하게 학교에 손님이 오거나, 학내 행사때 커피 등 차접대를 관행적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학생들에게 '도덕'적인 부분을 가르치는 선생들조차도 이러한 관행이 부당하다는 생각을 거의 안한다는 것이였다. '당연히' 학교 사무직들이 해야할 일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을 쓰고 나서 반응은 잠깐동안이나마 대단했다. 당사자들인 사무원들은 그런 관행은 완전히 폐지되어야된다며 흥분했고, 많은 사람들도 "자판기 갖다놓고 쓰면되지 꼭 여직원이 타와야 하나"등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일부는 "요즘 직장 갖기가 얼마나 힘든데 그정도 가지고 투덜대냐" "그럼 나이 많은 교장선생님이 커피 나를까"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지금. 학교 사무원으로 있는 후배나, 선생님으로 있는 후배들을 대하면서 모두 1년전의 상황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사무원 업무분장에 '내빈 접대'라는 항목이 완전히 사라졌는지, 또 인권위측에서 (당시에는 사례가 없다며 조치해줄 수 없다고 응답) 1년 사이 교육청 등에 어떠한 지시를 내렸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후배들과 사이버상의 친구들과의 이야기속에서 여전히 행사때 (극히 소수일지 아니면 다수일지 몰라도) 여 사무원들은 '차'를 나르고, 선생님이란 직업을 가진 분들도 (직접 시키지는 않더라도) 그 부분에 대해 전혀 인식하지 않고 생활을 해가고 있었다.

 

'차'를 접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그것은 개인적 친밀감이나 '조직'이 모두 '동질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을 때 무난히 이뤄질 수 있다. 이분화된 조직의 성질속에서 한쪽은 일방적으로 누군가를 '접대'하고 '준비'하고, 다른 한쪽은 그것을 기반으로 '대화'하고 논의를 한다면 그건 분명 부당한 것이다.

 

간혹 TV속에서 정규직 직원이 계약직 직원에게 "커피 부탁해요"라는 대사가 나왔을 때 어이가 없을때가 많았다. 그 방송을 보는 사람들중에 이제 막 회사에 취업하는 이도 있을테고, 그와 유사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그런데 방송전파를 통해 그것을 일반화시키면 어쩌라는 것인지.

 

같은 부탁이라도 상황을 봐가며 하고, 상대를 봐가며 해야 한다. 학교든 회사든 여직원들이 차를 접대하러 들어가지는 않았을것이며, 회사 차원에서 그것때문에 뽑지는 않았을것다. (만일 그런 의도로 뽑았다면 그 회사는 뭔가 큰 문제가 있거나 조직이 언제가는 붕괴할꺼다)

 

작년 그 글을 쓰면서 '차 접대'의 문제는 이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 사람의 '급'을 규정짓는 기준을 이런 것으로부터 하나하나 만들고 인지시키는 것이 무서운 것이다. 때문에 어떻게보면 '차 접대' 등의 소소한(?) 문제부터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뭐든 부당한 사례와 그것을 무의식적으로 행하게 만드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사람과 사람이 같이 살아가는 사회이기 때문에.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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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도 그랬지만 이번 마호메트 만평 사건은 어떻게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국제문제에 대해 둔감한지 새삼 느끼게 해줬다.

 

'마호메트 만평' 사건은 문명간 충돌로 유럽과 중동, 미국 등은 '제 3차 대전'으로 확산될 수 있는 가장 가능성있는 사건으로 생각하고 있다. 실제 세계인구의 3분의 1이 믿는 종교를 언론의 자유라는 이름아래 수치심을 안겨줬으니, 문제가 커질 법도 하다.

 

언론의 자유는 뭐든 맘대로 써도 된다는 자유가 아니다. 전체 질서를 유지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지키고자 하는 공공의 성격을 지녔을때 부여되는 자유다. 유럽 언론들의 입장을 만일 그대로 적용시킨다면, 우리나라 언론들이 유럽 언론인들 개개인의 사적인 이야기 - 심지어 그 부모를 욕하더라도 - 아무 말도 못한다는 소리다. 왜냐면? 언론의 자유니까. 하지만, 만일 이렇게 한다면 난리가 날꺼다. 우리나라 언론에 대고 저급이라느니, 쓰레기라느니 욕을 할것이다. (물론 정말로 이런 일은 안 일어날꺼다).

 

하지만 지금 '마호메트 만평'은 이렇게 일어나지 못할 일이 일어난 경우다. 16억 인구의 숭배자를 욕하고 짓밣은 것이다. '언론의 자유'를 잘못 적용해서 말이다.

 

이제 돌어와보면, 이런 엄청난 문제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아니 그전에 이러한 사건을 국민들에게 알려주는 우리 언론들은 어떨까.

 

각 언론사사이트를 비롯 포털의 뉴스사이트의 며칠간 메인을 보면 이 뉴스를 주요사건으로 제대로 처리한 곳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내가 놓쳤는지는 몰라도, 그나마 많이 본 기사 등에 걸린 내용은 알카에다가 만평 작가들에게 100만달러의 현상금을 내건 내용이나 어제인가 파키스탄 내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정도다.

 

그리고는 거의 안쪽에서 '국제'를 눌러 밑으로 조금 보다보면 나오게 된다. 사실 국제부분 뉴스를 다룰때는 우리 언론들은 크게 세가지 정도에서 빙빙돈다. (물론 간혹 이탈도 하지만).

 

첫째는 미국이야기다. 미국의 흐름이 세계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에 대해 이견은 없지만, 다른 국제문제와의 비중을 따졌을때도 너무 과민하게 반응함은 물론 세세하게 파고 들어간다. 미국내 처음 들어보는 연구소에서 어떤 발표를 하게되면 그게 마치 상식이 되는야 보도한다. 그러다보니 어느때는 커피가 건강에 좋다가 어느때는 독약으로 변하고 만다. (과하면 뭐든 안좋다는 우리 선인들의 말씀대로만 하면 이런 연구는 필요도 없다.)

 

두번째는 토픽성 이야기다. 최근만 해도 베트남에서 33년간 한번도 안잔 농부의 이야기라든가 나이 먹은 유럽인이 태국에서 10대 소녀들을 데리고 살았다든가 하는 흥미나 자극성 이야기들로만 판이 친다. 다소 어이없는 것은 대부분 동남아나 제3국가가 이런 류의 이야기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세번째는 우리와 정치 경제적 이슈로 첨예하게 대립될때이다. 물론 이런 때야 당연히 보도가 되야 하지만, 평소에 이름도 몰랐던 어느 한 일본 정치인의 망언을 보도하면서 그 사람이 어느정도 위치의 중요한 사람인지 지면소모를 해가며 이야기를 해대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마치 국민을 흥분시키려는 목적만이 존재하는 듯 싶다. 즉 오랫동안 국제적 흐름을 제시하다가 우리나라가 어떻게 대립각을 세우게 되었는지 꾸준히 제시해주기보다는 냄비근성처럼 확 한번 타오르다가 다시 식을때쯤이면 다시 미국이야기나 토픽성이야기로 끌고가는 패턴을 보인다.

 

이러한 연유로 우리 국민들도 국제문제에 대해서 둔감해질 수 밖에 없다고 난 생각한다. 16억의 인구가 분노하고 다시 몇 억의 인구가 이에 대치상태로 있어도, 우리 국민에게는 별개의 문제로만 인식한다. 대한민국내 10여만명으로 추정되는 무슬림들만 흥분하고 있을 뿐이다. 하긴 언론사 기자들조차 이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면, "자 이 그림이 그 그림이요"라며 마호메트 만평사진을 그대로 신문 혹은 인터넷에 게시해 내보냈다가 몇몇 무슬림들의 '항의성 요청'에 의해 삭제 혹은 수정했다. 근본적인 부분에 대해 고민없이 글로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한번 보여주지 뭐"라고 제시한 것이다.

 

우리 원유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중동은 이슬람국가가 많다. 기준도 잣대도 없는 언론의 자유 들먹이다가 엄청 높은 가격의 기름을 사야될지도 모른다. (설마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경전이 헌법을 초월하는 이슬람국가이기에 가능하다) 경제적인 타격까지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뿐만 아니다. 중국과 일본이 대치상태로 가도, 중국이 대만에 시위성 군사훈련을 해도, 세계에 이름도 모르는 질병이 창궐을 해도 우리는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도리어 샤라포바가 수영복 모델로 나섰다는 이야기나 할리우드의 어느 한 배우가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이야기에 눈길을 돌리리곤 한다.

 

국내 문제도 머리 아픈데, 무슨 국제문제까지 진지하게 살 필요가 있나라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과 과거 '집성촌'개념으로 끼리끼리 살다가, 이런 마을 개념이 사라지고 도시화가 되면서 겪었던 혼란스러움과 양극화현성을 떠올린다면, 조금은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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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새터 (새내기 새로배움터...오리엔테이션이죠.^^)의 시기가 왔다. 새터가 가본지 수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후배들로부터 들려오는 이야기는 꼭 우리때와 비슷하다. 시대가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선후배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비슷한 모양이다.

 

1. 술...

 

이거 빼놓고는 오티 이야기 안 나온다. 지금은 자연스럽게 마시는 학생들도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역시 대학 입학과 동시에 선배 동기들과 처음 마시는 술이기에 그 의미가 다르다. (90년대 후반까지는 정말 이때 처음 술 제대로 마셔본 신입생들이 많았다). 각 대학 총학생회 등은 혹 술 먹고 학과끼리 싸울까봐 적당히 마시라고 하지만, 교수들도 와서 술잔 돌리는데, 누가 막으랴. 일부 열혈 선배들은 자기 차로 열심히 근처 마트에서 박스째 술을 계속 조달하기도 한다.

선후배끼리 스스럼없이 친해지는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간혹 아침에 일어나 민망해지는 경우도 생긴다. 또는 오티내내 술때문에 잠만 자고 오는 경우도..^^. 적당히 마시지 않으면 후회가 되기도 했다.

 

2. 오티 CC...

 

CC가 정말 많이 생기는 때다. 지금이야 남녀공학이 많이 생겼지만, 전에는 남고 여고 나온 애들이 한 방에서 놀다가 다시 한방에서 (원래는 안되지만 술먹다 보면 그렇게 된다) 이곳저곳 쓰려져 자고, 또 챙겨주고 하다보면 그 짧은 2박3일 기간에도 많이도 생겨난다. 신입생끼리 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래도 남자선배와 여자 신입생의 확률이 높다. 때문에 휴가나온 군인선배, 이제 갓 제대한 예비역들의 참여율이 극히 높다. ^^

 

3. 장기자랑

 

신입생에게는 압박이다. 선배들에게 그리고 처음 보는 동기들에게 자기를 보여주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끼가 타고난 애들이야 선배에게 이쁨받으며, 마음껏 발산하지만 내성적인 사람에게는 아주 곤혹이다. 벌로 돌아오는 벌주 마시기에 지쳐 쓰려지는 신입생들도 간혹 있다. 한 해 지나서 자신들도 후배들에게 그렇게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생각안한 채 선배들이 잔인하게만 보인다. ^^

 

4. 왠 짐이 그리고~

 

요즘은 여행도 많이 다니고 인터넷을 통해 정보공유를 통해 어느 정도 사전정보를 알고 가지만, 과거에는 정말 한 짐 가지고 온 신입생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잠옷까지 가지고 와서 두고두고 동기와 선배들에게 이야기꺼리를 제공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어차피 스스로를 챙길 여유가 그다지 많지않은 오티다. 편하게 가면 되는 것을...

 

5. "00학과 화이팅" 하늘을 울려라.

 

몇학년 몇반때도 하나의 커뮤니티였지만, 이제 00학과로 수년차 나는 선배들과 같이 커뮤니티가 형성된다. 그리고 오티때 몇몇 과정에서 그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학과별 장기자랑부터 시작해 뜬금없이 벌어지는 타학과과의 스포츠(?)시합, 술 경쟁, 노래 경쟁, 즉석 문선경쟁(문화선전)부터 시작해 타학과에 잘생기고 이쁜 신입생 쟁탈전 및 사수전까지....모든 것이 학과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신입생에게는 새롭게도 느껴지지만, 한편으로는 '단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까지 심어줄 수 있다. (지금은 계열로 많이 나뉘었지만, 역시 그것도 하나로 움직이니..^^;;)



6. 늙은 선배들의 일장 연설...

 

06학번이 입학하면 재학생중에서는 가장 늙은 학번이 잘해야 98학번정도..(솔직히 이것도 심하다..00학번도 양심없다고 하던데..^^). 그런데 여기에 96학번이상, 10년차되는 졸업선배들이 등장한다. (물론 술 한 박스씩 사가지고) 그리고 일장연설..우리땐 어쩌고저쩌구...신입생들은 살짝이 긴장..."00학과 화이팅"으로 끝나면 그때부터는 10년차이가 10개월차로 확 줄어든다. 그들이 나중에 나에게 힘이 되어줄 선배인지 아닌지를 떠나, 졸업후에도 후배를 찾는 열정만은 인정해줬다.



요즘은 오티가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모교출신 연예인이 와서 흥을 돋운다고 한다. 그러나 변함없는 것은 오티때 이미지가 참 오래간다는 거다. 그리고 오티때의 인연이 대학내내 질기게도 이어져 가고, 그때 선배들 한마디 한마디가 의외로 후배들에게 깊이 박힌다는 것이다.

 

학교에서 추진하고 선배들이 만들어주지만, 결국은 신입생들이 주인공인 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가지. 올해는 오티때 술때문에 사고 없었으면 한다. ^^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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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인들이 1인 시위에 한창이다. 워낙 유명한 사람들이다보니 1위시위가 스크린쿼터 축소에 반발하는 모습이라기 보다 스스로를 홍보하는 듯한 이미지로까지 비춰진다. 물론 그들은 진실로 '문화주권'을 지키지 위해 스크린쿼터 축소를 반대하는 것일것이다. 그런데 난 이들의 주장에 대해 왜 쉽게 공감하지 못할까.

 

첫째 이들이 말하는 문화란 무엇일까. 문화적 부분인 영화를 경제적 논리로 따지지 말라고 말하지만, 이들이 말하는 문화와 따지지 말라는 경제적 논리는 무엇인까. 최근 한국영화는 양적으로 발전했지만, 질적으로 발전했다고는 보기 힘들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어쩌면 왕의 남자가 1천만 관객을 넘은 것이 반가운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오렌지가 영어로 뭐지?" "델몬트"라는 식의 억지웃음과 비속어 퍼레이드가 과연 우리의 문화인가?

 

어느 때부터인가 영화가 수십 수백만을 넘어 1천만 관객이 찾는 동안 영화인들은 질적으로 향상하기 위한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궁금하다. 단순히 스타 몸값 올려주기 위해 제작편수만 늘어난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둘째 경제적 논리로 따지지 말라고 이들은 말해지만, 영화와 그들의 움직임이 가장 경제적 논리에 따라 움직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가? 영화 한편 찍을때 스타들이 곧잘 "시나리오 보고 골라요"라고 말하지만, 우리는 이미지에 안 맞는 배우가 역을 맡아 등장하는 것을 종종 본다. 수억씩 주고 출현해달라고 하는데 거부할 사람 없다. 곧 돈의 논리가 그들의 출연 여부를 결정한다. 그것으로 뜨면 당연히 기업CF 출현이다. 그런데 그 기업들은 어디서 돈을 버는가. 국내뿐만 아니라 수출까지 고려해야하고, 이번 FTA는 그런 기업들에게 이익을 준다. 영화인들이 진정 문화주권을 위해서라면 그들의 이익을 과감히 포기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한다. 이런 부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 것은 왜일까.

 

셋째. 그들은 외국영화가 들어오면 평등치 못한 경쟁이 된다고 말한다. 솔직히 이 이야기 들으면서 왠지 그들이 뻔뻔해보이기까지 했다. 그들의 스타적 위치를 이용한 가식이라고까지 보였다. 이 땅에서 영화는 어차피 불공정 경쟁이였다. 지금 극장에서 상영하는 영화들은 엄청난 제작비와 수억씩 받는 배우들이 출연한다. 이 영화이외에 저예산 (일명 독립영화) 등은 극장에 제대로 걸리지도 못한다. 영화계가 죽는다고 말하는 이들의 그 영화계는 도대체 어떤 부류들일까. 저예산영화를 위한 스크린쿼터를 주장할 생각은 없는가? 그들의 광화문 시위가 밥그릇 챙기기식으로 비춰지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강한 자로서 약한 자를 누르고 있다가 더 강한 자가 들어와 밥그릇 뺏으려니 "문화"와 "국익"을 들고 반발하는 것으로밖에 비춰지지 않는 것이다.

 

스크린쿼터 축소에 대해 한편에서는 "왜 미국이 하라는대로 하는가?"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사대주의라는 말도 한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FTA협상의 내용을 보고 평가를 해야한다. 우리에게 이익이 없으면 과감히 거부해야 한다. 찾을 수 있는 이익을 다 찾아야 한다. 그게 안되면 과감히 거부해야 한다. 그런 것을 거부못하는 정부에 대해서는 비난의 화살까지 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부분까지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우리 밥그릇만 챙기자"식의 영화인들의 목소리는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뉴스를 꼬박꼬박 다 보지 못해서 그런지 위의 부분들을 언급한 영화인들은 못 본 것 같다.

 

영화인들은 '문화'와 '국익'이란 단어를 스크린쿼터 축소 반대시위에 사용할 때는 왜 그러한지 국민들에게 더 설명해야 할 듯 싶다. 아직은 외제차 타고 명품만 찾으며 영화가 망하든 말든 수억의 출연비만 챙기면된다는 식의 태도가 국민들에게 더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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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콘서트, 웃찾사, 웃으면 복이와요, 폭소클럽....... 관객 모셔다 놓고 하는 개그가 몇 년째 유행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도 이제 식상해지기 시작했다. 특정한 한 코너 정도는 그냥 웃으면 넘어가겠지만, 다른 코너들을 보면 시간이 아까워 채널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요즘 개그를 보며 난 과거 코미디를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참고로 개그는 즉흥성이 강한, 코미디는 하나의 스토리를 갖고 있는 연극이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의 코미디와 현재의 개그를 나누는 것은 쉬워보인다.)

 

유머1번지, 웃으면 복이와요(원조), 쇼 비디오쟈키 등의 웃음은 포인트가 없는 자연스러움이었다. 아예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들은 연관성이 없는 흐름은 집어넣지 않았다. 당시의 코미디언들은 웃기길 원했고, 그러기 위해서 노력했다. 그러나 지금은 웃음을 강요한다.

 

관객이 안 웃으면, 그리고 분위기가 이상하면 웃으라 강요한다. 압박이 가해지는 것이다. 신인들 내보내 놓고 아예 대놓고 말한다. 안 웃기더라도 여러분의 웃음이 이들을 키운다고. 처음에는 나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은 옆으로 돌아가며 의아해진다. 안 웃기면 웃지 않아도 된다. 그게 관객의 권리이다.

 

비록 돈 내고 보는 것이 아닌 추첨으로 보러 가는 것이지만, 그들 개그맨의 상품성을 높여주는 것은 이들 관객이다. 그것을 알기에 지금도 대학로에서 수많은 무명 개그맨들이 노력한다. 하지만 노력과 결과는 반드시 일치하는 것도 아니고, 그 일치의 과정에 관객들이 억지로 끼여들 필요는 없다.

 

현장에서 직접 개그프로그램을 보고 나오면 사람들의 머리속에 남는 것은 파편화된 기억뿐이다. 순간적인 유행어나 행위만이 남는다. 지속적인 웃음으로 이어지기 힘들고, 단지 못된 습관을 하나 더 추가할 뿐이다.

 

웃는 것은 좋은 것이다. 웃으면 건강에도 좋고, 성격도 유들유들해지며, 다른 사람에게까지 행복을 준다. 하지만 억지 웃음은, 특히 강요당한 웃음은 정신건강에 안좋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강요된 웃음으로 시간을 보낸 공개프로그램 장소에서 나올 때면 이상하게 피곤하다.

 

FD의 사인에 '~' '~'하고 소리지리는 아르바이트 방청객들처럼 일하고 나온 기분이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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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홈페이지에서...

 

자세한 위치를 알려줄 수 없다고 나온다.



인터넷 검색으로.....

 

친절하게 검색된다. 

또다른 검색으로 찾은 내용..



"국정원은 내곡동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3호선 양재역 7번 출구로 나와서 4422번 버스를 타시고 헌인릉에서 하차하시면 됩니다. 물론 성남 가는 방향의 버스가 많으므로 다른 버스도 있답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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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만에 내 블로그에 14만여명이 들어왔고 조회수는 30여만이 넘었다. 덕분에 최근에 문제가 되는 악플을 내 블로그에서 경험했다.

 

사실 직업상 악플 (혹은 악의적인 메일)에 대해 그다지 신경쓰는 편은 아니다. 도리어 내 글에 대해 조목조목 따지는 글은 흥분까지 해가면서 읽는다. 반론 혹은 동의의 여지가 있는 글이기에, 나를 키워주는 글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어제 내 문제(?)가 된 글밑에 달린 300여개의 댓글을 보고는 흥분대신 편안함을 느꼈다. 솔직히 악플은 몇개 달리지 않았다. "네가 만들어봐라" 수준은 최근 인신모독의 악플에 비해서는 귀여운 수준이다. 뭐 어쩌다가라도 내 글을 본다면 그러한 반응이 보이는 사람이 있을 법하기에 넘어갈 수 있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악플의 난이도(?)가 낮아서가 아니라, 내 악플을 밀어내는 선(善)플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내 글에서 뭐가 문제인지 (오타까지 지적을 --;;) 또 왜 공감하는지, 더불어 악플을 단 사람들에 대한 비판까지 하는 글들을 보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글에 적당한 추가글 하나 다는 정도였다.

 

조금 과장일수도 있고 미리 앞서나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난 내 글에서 보여진 댓글의 모습에서 이후 모든 인터넷상의 글에서 그러한 네티즌들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을까 싶었다.

 

인신모독이나 근거없는 주장에 대해 네티즌 스스로 정화작용을 하고 비판을 하며 몰아내기가 이뤄질 것이다. 포털 게시판이 로그인해서 댓글을 남기는 상황에서 악플을 단 사람의 아이디는 곧 '정화대상 아이디(?)'로 선정되어 네티즌들의 호된 질책을 받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말과 글은 총이나 칼보다 무섭다고 들었다. 거꾸로 그 어떤 공간보다 편안함을 제공해 줄 수있다고도 배웠다. 쓰기 나름이고 말하기 나름이다.

 

선(善)플이 악(惡)플을 100% 밀어내기에 성공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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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세의 문제는 청소년 보호법에서 시작한다. 청소년 기본법에 의하면 만 23세까지 청소년에 포함되기 때문에 19.5세의 문제는 해당되지 않는다. 보호대상으로 그들을 편입시켜놓은, 즉 규제를 위한 법이 혜택을 위한 법보다 상위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주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좀더 근본적으로 들어가보면 19.5세의 문제는 나이가 아닌 대한민국 학제의 문제로 들어가게 된다. 8살 3월에 입학하고 20살 2월에 졸업해 10대를 미성숙 기간으로 규정지어 놓은 학제로 인해 19.5세들은 1년의 시간을 어정쩡한 경계선위에 서 있는 것이다.

 

어제까지 19살이였던 학생이 오늘 20살이 된다고 술과 담배를 피워도 된다는 것은 어디에 근거한 것인가? 고등학생에게는 보호와 규제가, 대학생에게는 자유로운 생활을 보장해주어도 된다는 것의 근거는 무엇인가? 건강에 안 좋으면 안 좋은 것이고, 무분별한 유흥문화로의 몰입은 30~40대가 되어서도 문제인 것이다. 비단 10대들에게 강요할 문제는 아니다.

 

어느 게시판에서 그런 글을 본 것 같다. 어른들이 가장 착각하는 것중에 하나가 10대들은 아무것도 모르며 가치판단이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0세기 이전 철학자들이 만들어놓은 이야기를 도덕책에 써놓고 강요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미 알거 다 아는 애들에게 "산타크로스는 착한 일 해야 온다"나 "아기는 손 꼭 붙잡고 자면 태어난다"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식밖에 안된다는 것이다.

 

술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 해서 보호되는 것이 아니다. 유해매체에 대한 접근성을 떨어뜨려놓는다고해서 능사는 아니다.

 

아무리 광활한 사막에 떨어뜨려놓더라도 살아나가는 방법과 길을 알고있다면, 힘이 들더라도 살아갈 확률은 높아진다. 청소년들을 법으로서, 어른들의 기준으로 그들을 규제하려고 강제로 술집을 못가게 하고 담배를 못피게 하며 이성교제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보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들에게 그게 "왜" 안되고 자제해야 하는지 '삶의 지도'를 어릴 적부터 그려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국어 영어 수학 공부에는 국가적 투자를 하면서 왜 이런 '지도 그려주기'에는 투자를 안하며 이후 말썽이 생기면 '교육'운운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그들은 어쩌면 국영수 공부해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낼 수 있는 현실에 대해 답답하기 때문에 술과 담배를 찾고, 일탈적 행동을 행하는 것일 수도 있다.

 

19.5세들의 문제는 19.5세뿐만 아니라, 이 땅의 청소년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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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아직도 하냐? 몇년째 같은 프로잖아"

 

TV를 보던 중 동네 아저씨가 던진 말이다. MBC에서 하는 '무한도전'을 보고 하는 말이다. 솔직히 무슨 도전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말장난을 더 잘하고 다른 사람 험담을 잘하며 이합집산(?)을 잘하는지 평가하는 도전이라는 생각도 드니 정말 '무한 도전'인듯 싶기는 하다.

 

그 아저씨는 몇년전 유재석씨가 타방송국에서 한 프로그램과 혼동한 것 같다. 그러나 그 아저씨뿐만 아니라, 대부분 사람들이 현재 토요일과 일요일에 하는 연예프로그램들에 낯설지 않은 느낌을 가질 수 있겠다. 제목만 살짝 바꾸고 몇 가지 코너만 바꾸면, 큰 틀은 똑같은 하나의 오락프로그램이 태어나는(?) 것이다.

 

강호동, 유재석 등이 진행하는 연예프로그램을 보면 이미 수년전부터 그대로 답습해온 룰대로 한다. 그냥 연예인 섭외하고 좋은 장소 성외해서 놀꺼리 던져놓으면 자기들끼리 농담따먹기하고 웃으며 논다.

 

시청자들은 연예인들이 술자리 농담하는 것을 시청료와 전기료 내가며 보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그러면서 대리만족 느끼고 재미있지않냐고 말하지만, 정말 '재미'를 못 느껴봤기 때문에 그러한 '저급' 농담 따먹기에 몰입한다고 본다.

 

'개그콘서트'나 '웃음을 찾는 사람들'에서의 개그맨들은 그런 면에서 한층 낫다. 관객들에게 그리고 시청자들에게 평가받고, 코너 자체가 퇴출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이디어를 짜내기 때문이다. 물론 저급발언 등이나 억지웃음을 유도하는 개그도 있지만, 적어도 그들은 그들을 보기위해 온 사람들이나 시청자들에게 '서비스'하는 정신은 잊지 않는다.

 

그런데 '연예편지'나 '무한도전'과 같은 오락프로그램은 시청자들을 아예 무시한다. "그냥 우리 마음대로 할테니 웃든 말든 알아서 해라"라는 식이다. 어차피 시청률때문에 고민하는 것은 방송국이고 그들의 몫은 아니다. 그들은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옮겨 똑같이 농담따먹기를 하면 그만인 것이다.

 

가족을 모이고 하고, 이야기꺼리를 만들고 한편으로 감정의 배설효과를 노리고자 보는 오락프로그램들이 연예인들의 돈벌이를 위한 통로로 이용되고, 이름을 알리기 위한 광고방송으로 이용되는 것에 대해 씁쓸함을 감추기 어렵다.

 

"저런 프로 나도 만들겠다. 그냥 재들 불러다가 놀라고 하면 되잖아"

 

오락프로그램 PD은 들어갈 때만 힘들지, 프로그램 만들때 고민없이 아무나 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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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에 대한 글쓴이 의견..^^

 

많이도 들어오셨네요. 개인적으로 댓글들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나서 글 추가로 올립니다.

 

우선...악플..제가 뭐라 안해도 다른 분들이 악플에 대해 따로 비판해주시니 감사.^^. 글 내용이 이상하거나 "이건 아니다" 싶으면 비판을 해주시는 것이 좋을 듯 싶네요..비난은 어째 눈이 가지도 않고, 저 스스로도 무시가 되니...."그럼 네가 만들어라"라는 것은..음...축구해설자들에게 "그럼 네가 선수로 뛰어라"라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듯 싶네요..또 그런 분들의 논리대로라면 월드컵때 축구선수들의 플레이에 대해 이야기한 대한민국 수백 수천만 국민들 모두 입을 다물었어야 했고요..^^. 연예프로그램 비판할 수 있는 것이 연예프로그램 PD로만 한정될 수는 없잖습니까...(제목때문에 의견과 다르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내용상으로는 그만큼 볼만한 내용이 아니라고 말하고싶었던 건데, 그것을 "그래 만들어봐라"라고 댓글을 다시니..다소 난감해서 글쓴이 의견에 관련 의견 남깁니다. ^^;;..제가 만든 프로그램을 보고싶은 분들은 방송국에 청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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