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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분단된 탓에 험한 의무를 지고 생활하던 8명의 군인이 죽고 2명은 중상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28사단 GOP에서 일어난 일명 '김일병 총기 난사 사건' 

 

네티즌들은 또다시 죽은 자와 죽인 자의 편으로 갈라서서 논쟁을 벌이고 있고, 정치권은 각각의 이익에 맞게 논평을 내면서 서로를 공격하려 이빨을 갈고있다.

 

 

군 통수권자이자 군 면제자인 윤석열 “군의 대비 태세와 훈련 부족”…???

몇 개월 보면서 느낀 것은 윤석열은 이 나라 대통령이 아니라 관찰자의 모습으로만 있는 것 같다. 윤석열은 27일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과 관련해 "지난 수년간 우리 군의 대비태세와 훈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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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안의 귀한 아들이 이놈의 땅에 태어난 이유로 또래에게 '미친 놈' 'XX'등의 욕을 먹으면서 생활을 하는 것이 정상적인 모습은 아니다. 그렇다고 그러한 몇 마디에 쉽게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 역시 정상은 아니다. 한편의 비정상을 지속적으로 묵인한 결과가 다른 한편의 비정상을 촉발시켜 이같은 참극을 낳았다. 과연 누구의 잘못일까.

 

한 쪽은 말한다. '욕 몇마디에 쉽게 자신을 포기할 녀석이라면 죽어라. 사회에 나와서도 그러한 사람은 버티지 못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

 

다른 쪽이 말한다 '오죽했으면 사람을 죽일 생각을 했을까. 이번 기회에 군대 인건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총을 쏜 군인도 피해자다'

 

둘 다 정답이고 둘 다 오답이다. 스스로를 쉽게 버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에 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격박탈권이 하루 혹은 일주일 먼저 들어온 선임병에게 있는 군대 환경을 조금은 고려해야 한다. 사람을 죽일 생각을 할 정도로 절박했다면 정말 그 사람을 동정하고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그렇다고 군대 인권 운운하는 것은 문제다. 거의 강제로 끌려오다시피한, 행위에 대한 성과가 전혀 없는 군대사회에서 100% 인격적으로 후임병을 대할 수는 없다. 군대를 갔다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전쟁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무기를 합법적으로 소지한 군인을 정신적으로 긴장시키지 않으면 더 큰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은 해답이 없는 쪽으로 간다.

 

 

이 나라의 상황과 군대라는 특수집단의 폐쇄적 모습을 논외로 칠 경우, 난 개인적으로 수류탄을 던지고 40여발의 총을 난사한 그 군인에게 더 큰 죄를 묻고싶다. 이유는 하나다. 죽일 이유가 없는 사람들을 죽이고, 그 가족은 물론 자신의 가족들에게까지 슬픔을 주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정신적 고통을 해소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늦은 나이로 군대를 갔다와 지금의 군대상황을 어느정도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러한 방법은 여러가지로 보았다. 문제는 그것을 찾을 의지도, 그리고 스스로를 다스릴 생각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고, 그때문에 그 군인의 죄는 무거운 것이다.

 

2004년초에 이런 말이 군대에서 떠돌았다.

 

'어느 부대에서 견장(지휘권을 상징)을 차지않은 한 병장이 이등병에게 심부름을 시키자, 그 이등병이 '0병장님 영창가고 싶으십니까?'라고 응답했다고 한다. 당연 그 병장이 이 이등병에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그 이등병이 속한 분대장에게 건의하는 것 뿐이다. 그리고....아무것도 못한다'

 

아마도 이번 일이 지나면 군대는 더 좋아질 것이다. 서로 상호간의 존칭을 쓸 지도 모르고, 지휘권을 가진 자 이외의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게 군생활을 할지도 모른다. 후임에게 한마디 욕했다가는 그날로 영창이나 군기교육대를 들어갈지 모른다. 선임은 후임의 눈치를 봐야하고 후임은 1년후 자신이 그런 처지가 될지 모르고 후임으로서의 편안함을 누릴지도 모른다.

 

군대에서도 인권은 중요하다. 누가 누구에게 욕하거나 구타하는 것은 분명 비정상적인 일이다. 명령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군대라는 특수사회에서 그렇다고 사회에서처럼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끌려갔다'라는 생각은 이 비정상을 정상으로 만들었고,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또다시 이번 문제를 가지고 여러 학자들과 방송인들은 해답없는 토론을 벌이고, 비판을 하고 논평을 쏟아낼 것이다. 그리고 현직에 있는 군인들은 비아냥거린 태도로 개그프로그램을 대체해 그 모습을 볼 것이다.

 

횡설수설했다. 젊은 나이에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다가 죽은 8명의 병사의 명복을 빈다.

 

- 아해소리 -

 

PS....한나라당이 이번 사건을 빌미로 군기강이 해이해졌다며 여권을 공격하는데, 뭐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늘 그렇지만, 한나라당이 자신들의 과거를 되돌아보지 않는 것은 언제나 유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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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구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읽는 여행관련 서적은 참으로 사람을 힘들게 함과 동시에 한편으로 기쁨을 준다.

 

 

제주 성산일출봉 (성산읍) 식당 몇 군데 평가.

며칠 동안 성산일출봉 주변 성산읍에서 지냈다. 과거 지나가는 정도로 지냈던 곳이지만, 이번에는 마을 탐방 계획으로 가서 천천히 둘러보며 지냈다. 렌트카도 없이 버스로 가다보니, 식당도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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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구의 포구기행

 

특히 나같이 역마살이 낀 사람은 더더욱 그렇다. 병원에서 우연히 집게된 '곽재구의 포구기행'은 사람마음을 심하게 출렁이게 했다. 멋있는 사진과 몇몇 시적인 표현은 일반적인 기행서적에 많이 나오긴 하지만, 솔직한 자신을 처지를 읽은 이와 동일시시키기에는 굉장히 어렵다. 곽재구 시인은 비틀어진 틈사이를 절묘하게 끼워맞추는 식으로 읽는 이를 푸근하게 만들었다. 책을 집은후 읽을만한지 편 첫 문장은 여행자를 추구하는 사람들을 입장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조금 외로운 것은 충분히 자유롭기 때문이다"

 

 

혼자 사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말은 아니다. 외로움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고, 단지 그 정도의 차이다. 많은 외로움은 인간이 살아가는 목적을 상실케 하지만, '조금' 자신이 느끼기에 스스로를 되돌아 볼 약간의 외로움은 자유롭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다른 한 편의 구절은 떠나고 싶어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초라하게 만들었다.

 

"금고에 돈이 쌓여있고 도시에 큰 집이 있고 책갈피속에 연인의 사랑스런 편지가 가득 꽂혀 있다면 그 영혼이 어떻게 가벼워 질 수 있을까요. 족쇄에 채워진 채 자신의 몸 하나도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지상의 풀잎이나 나뭇잎 하나를 들어올릴 수 있을까요"

 

나도 그랬다. 한번 움직이려면 이리저리 따지다가, 곧 내가 가고자 하는 공간과의 교감을 끊어버렸다.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곽재구시인은 현실을 말하는데 또한 인색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으면서..

 

"산다는 것, 밥을 먹고, 시를 쓰고, 노동을 하고 음악을 듣고, 자유와 정의의 획득을 위한 얼마쯤의 투쟁을 하고 주말엔 한 아낙과 새끼들의 손을 잡고 영화관에 가고...왠지 그런 모든 풍경들이 다 쓸쓸하게 다가왔다"

 

사는 것이 이렇게 몇줄로 처리된다는 것에 허망함조차 느껴졌다. 물론 삶의 세세한 곳에는 복잡한 인간사가 한꺼번에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 모두가 이 틀을 벗어나지는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 누군가가 삶에 대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저 글이 떠올랐다.

 

삼천포, 정자항, 구만리, 순천만, 구시포, 우도, 조천, 지심도, 어란포구.......

 

이 땅 곳곳의 아름다움을 한번더 느낄 수 있는, 손안의 여행을 이 책을 통해 충분히 느꼈다. 어쩌면 근일내 이 책을 배낭에 넣고, 이리저리 헤매고 있을런지도...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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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년도인가 대학 4학년때 우연하게 본 5.18기념 열린음악회를 보고 난 3년만에 눈물을 흘렸다.

 

안치환씨가 나와 '님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는데, 설정일런지는 모르지만 안치환씨가 독백처럼 잔잔하게 시작을 해서 장엄한 분위기로 전체를 이끌었다. 98년 대선, 김대중 전대통령이 집권을 한 직후인지는 모르겠지만, 광주시민들은 눈물을 흘렸고, 그 장면을 TV로 보는 나도 혼자서 눈물을 흘렸다. 집회에 나가 수없이 많이 부른 '님을 위한 행진곡'이지만 분명 그때 조그마한 화면속에서 불리어지던 그 노래는 정의할 수 없는 뭔가를 남겼다.

 

 

전두환 손자이자 전재용 아들 전우원의 고백, 그리고 전재용의 한숨.

전두환의 아들이자 전재용 아들 전우원이라 주장하는 사람이자신들의 가족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애초 “진짜냐”라는 반응은 조선닷컴이 전재용을 인터뷰하면서 사실인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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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다시 TV를 봤다. 삶에 지쳐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살아가기에 어쩌면 난 광주에서의 열린음악회에 큰 기대를 했는지 모른다. 눈물까지는 아니더라도, 어설프게나마 치열하게 살았던 과거의 내 모습을 조금이나마 기억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거기에는 더 이상 아픔을 간직한 광주도, 시대의 민주화를 이끌었던 광주도 없었다. 그냥 가수들의 노래 한마당이었다.

천지인은 차라리 '청계천 8가'등의 자신들의 노래나 조용히 부르고 나갔으면 좋았을 것이다. 대학때 강한 메시지를 대학인들에게 어필하던 그 천지인이 아니었다. 홍대앞 흔히 볼 수 있는 밴드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천지인'이 아닌 '천지인밴드'로 소개되었을 때 이미 알아차렸어야 했다. 그들이 부른 '님을 위한 행진곡'이나 '바위처럼'은 광주의 아픈 기억이 몇년도에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중고등학생들의 철없는 말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광주발 열린음악회는 다른 지역에서 해도 상관없을 듯 했다. 광주의 기억을 되짚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빌미로 하나의 프로그램만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25년이 지난 지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광주를 이야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들이 목숨바쳐 이룩한 민주주의 결실을 보았으니, 이제는 조금은 무거운 분위기에서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광주의 기억은 여전히 무겁고 또한 계속 무거워야 한다. 그것이 축제로 혹은 경축일로 기억되는 순간 광주는 다시 죽는다. 광주의 기억을 되짚고자 하는, 그리고 그 아픔을 같이 느끼고자하는 모든 행사는 무거워야 한다. 10분짜리 TV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그래야 한다. 그 기억을 가지고 있는, 80년 5월의 광주 거리를 기억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대로 시대의 가벼움을 보여주어서는 안된다.

오늘 열린음악회는 광주를 선택하지 말았어야 했다.

-아해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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