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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박근혜, 청와대에서 쫓겨나다…끝이 아닌 시작인 이유.

결국 헌법재판소가 탄핵 인용을 하면서 박근혜가 청와대에서 쫓겨났다. 당연한 결과지만, 이 지점에 오기까지 닭의 뻔뻔한 거짓말을 끊임없이 들으며 소진됐던 국민들의 에너지는 어디서 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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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시작한 박근혜 탄핵 움직임은 12월 9일 탄핵소추안이 통과되고, 2017년 3월 10일 탄핵 됐다. 혹자는 이와 비교해 ‘윤석열의 탄핵은 너무 성급한 것이 아니냐’라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민간인의 국정농단과 계엄령 발동으로 인한 쿠데타(내란)은 완전히 다른 내용이다. 박근혜는 국회를 진압하려 하지도 않았고, 국민을 향해 총을 들지도 않았다. 그래도 오랜만에 박근혜 탄학 당시 상황과 촛불집회 상황을 돌아보자. 어차피 윤석열도 겪을 일이다. (사랑하는 김건희 그리고 지인들 지키고자 여기까지 오다니. 대단한 윤석열이다)

 

1024JTBC 최순실 태블릿 보도로 바로 하야와 탄핵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에 올라왔다. 야권에서는 하야 중심으로 언급했다. 이유는 과거 노무현 대통령 탄핵 경험 때문이다. 당시 국민적 역풍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무 조심한 것이다. 정치권 내에서의 탄핵은 1026일 당시 성남시장 이재명이 처음 언급했다. 이재명이 자신의 몸값을 올린 시기이기도 하다.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촛불집회 : 10월 29일 1차 주최측 추산 50,000명 (경찰측 추산 12,000 / 총참석자 50,000)

 

119일 청와대는 하야는 절대 없으며, 차라리 탄핵을 하라는 입장이 나왔다. 나름 본인의 뜻에 따라 나갈 수 있었지만 이를 거부했다. 결국 국민들이 폭발했다.

 

촛불집회 : 11월 12일 3차 1,060,000명 (280,000명 / 1,410,000) (처음으로 100만 돌파, 경찰 추산도 20만 단위로 한순간에 뜀)

 

1121일 더불어민주당은 의원총회에서 탄핵을 당론으로 채택했으며 뒤이어 이춘석을 중심으로 한 탄핵실무추진준비단을 구성했다.

 

촛불집회 : 11월 26일 5차 1,900,000명 (330,000명 / 4,270,000명) (경찰 추산 첫 30만 돌파)

 

1129일 박근혜가 제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 박근혜는 자신의 진퇴(進退)를 국회에게 맡기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실제로는 시간을 벌려는 치밀한 의도가 엿보이는 승부수를 던졌고 이로 인해 비박계는 탄핵 참여 입장을 철회한다. 이는 국민의 분노를 일으켰다.

 

촛불집회 12월 3일 6차 2,320,000명 (430,000명 / 6,590,000명) (경찰 추산 최대규모 촛불집회, 정부 수립이래 사상 최대규모)

 

새누리당 비박계는 128일까지 여·야 간의 대통령 퇴진과 관련한 협상이 결렬될 경우 129일 탄핵을 표결하자고 주장하였다. 반면 야 3당은 기존에 합의한 대로 122일 탄핵안을 표결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로 인하여 비박계를 중심으로 새누리당이 탄핵을 무마시키거나 최대한 늦추려고 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현실적인 이유로 야 3당도 129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당시 새누리당 상당수가 9일 탄핵에도 반대하고 대통령 4월 퇴진을 당론으로 채택한 데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을 필두로 많은 사람이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7~8일경 박근혜 4월 퇴진 수용 담화 뒤 9일 탄핵을 무산시키고 개헌을 추진하여 대통령 퇴진을 하려 한다'는 시나리오를 제기하는 등 앞날이 꼬이는 분위겨였다.

 

그러나 결국 123일 오전 410분에 야3당 및 무소속 국회의원 6인을 포함한 171인에 의해 탄핵안이 발의됐고 126, 박근혜는 이미 무의미해진 4월 퇴진설을 수용해 사실상 국회의 탄핵소추안 표결을 받아들였다. 새누리당은 당론을 정하지 못하고 자율 투표에 맡기기로 했다.

 

129일 오후 324분에 투표가 시작됐다. 오후 41분 투표함을 열고 개표가 시작되었다. 6분 뒤, 감표(監票)를 하던 국민의당 채이배 의원이 등을 돌리고 같은 당 박지원 의원에게 손가락으로 '2', '3', '4', ''표시를 하는 것이 관측하며 사실상 탄핵소추안이 통과댔다.

 

촛불집회 : 12월 10일 7차 1,040,000명 (166,000명 / 7,630,000명 (전날(12월 9일)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2017310일 헌법재판소 탄핵 결정

 

2017년 3월 11일 20차 708,160명 (경찰은 비공개 / 16,562,290명)

 

 

여기서 재미있는 상황은 20161129일 박근혜의 제3차 대국민담화 당시다. 이 당시 비박계는 이 담화 한번으로 흔들렸고, 탄핵 참여 입장을 철회했다. 그리고 며칠 후 국민들은 200만 이상 모여 정부 수립이래 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를 열었다. 당시 경찰 추산도 43만명이었다. 그렇게 줄이고 줄여도 40만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는 것이다.

 

윤석열이 7일 아침 담화를 하고 친한계인 조경태가 탄핵 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섰다. 스스로 탄핵에 반대하면 비상계엄 부역자라고 말했는데, 스스로 부역자가 됐다. 그리고 여전히 국민의힘 의원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시사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민도 돌아섰고 미국 영국 등의 국가들도 이제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국가 이미지는 추락했고 윤석열은 대한민국 최대 리스크로 남게 됐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은 보수 궤멸을 외치며 탄핵에 반대한다. 보수도 대한민국이 있어야 존재하는 거 아닌지. 박근혜 교훈에서 보수 궤멸만 배웠지, ‘국민 분노는 배우지 못했나 보다.

 

그나저나 김건희 하나 지키자고 여기까지 올 줄이야. 

 

- 아해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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